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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와 지리

선혜입니다 2014. 10. 31. 00:41

 

 

 

 

역사나 문화재를 공부하다 보면 풍수지리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풍수지리란 말 그대로 풍수지리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산세(山勢), 지세(地勢), 수세(水勢) 따위를 판단하여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해 설명하려는 이론이나 주장이라고 나오는데요. 흔히 풍수지리하면 많은 사람이 묏자리를 잡는 일을 떠올리곤 하죠.

 

 

 

 

음양론(陰陽論)과 오행론(五行論)을 기반으로 하는 풍수지리는 땅에 관한 이치(地理)를 체계화한 전통적 논리구조입니다. 유교 경전인 주역(周易)에 준거해 길한 것을 추구하고 흉한 것은 피하는 것(追吉避凶)’을 목적으로 하죠.

 

 

 

 

풍수지리는 크게 산사람의 땅자리를 찾는 양택풍수(陽宅風水)와 죽은 자의 묘지를 찾는 음택풍수(陰宅風水)로 나뉘는데요. 양택풍수는 도성의 입지를 정하거나 마을집터원림의 터 잡기를 비롯해 수목의 위치를 결정할 때 적용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경복궁의 입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은 전형적인 명당에 있습니다. 조종산(祖宗山)인 백두산 자락이 조산(祖山)인 삼각산(북한산)과 주산(主山)인 북악산까지 이어져 경복궁에 닿고, 경복궁의 주위에는 명당의 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사신사(四神砂)에 해당하는 좌청룡(낙산)-우백호(인왕산)-남주작(남산)-북현무(북악산)가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계천과 한강은 각각 내명당수, 외명당수에 해당하는데요. 명당수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입지죠.

 

 

▲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 아산외암마을 전경. 멀리 비보림이 보인다.

 

 

 

물론 마을의 입지에도 풍수지리가 관여했습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올라있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 아산외암마을을 한 번 살펴볼게요. 아산외암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인데요. 이곳에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소나무숲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 숲은 마을의 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인 수구(水口)를 막기 위한 수구막이로 사용된 숲인데요. 이것은 부족한 기운을 보태기 위해 비보(裨補)의 역할을 합니다. 비보와 반대되는 것으로는 압승(壓勝)’이 있는데요. 압승은 인위적인 힘으로 나쁜 기운을 억누르는 것을 말하는데, 대개 사찰의 입지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 논산명재고택 전경. 바깥마당에 명당수를 가두어 만든 지당이 보인다.

ⓒ명재고택 홈페이지

 

 

 

 원림을 조성할 때에도 풍수적 고려는 이루어졌습니다. 논산명재고택 바깥마당에는 네모난 연못이 있습니다. 이 연못은 바로 서류동입(西流東入)하는 명당수를 잠시 머물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다시 말해 명당수를 가두어 지당으로 만든 거죠. 사실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수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물을 그대로 방류하면 지기가 쇠할 수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동쪽으로 흘러든 물을 잠시 머물게 한 거죠. :D

 

 

 

▲ 사적 제135호 부여 궁남지

 

 

 

혹시 사적 제135호 부여 궁남지에 가보셨나요? 궁남지는 부여 남쪽에 있는 백제의 별궁 연못으로,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삼국사기기록을 바탕으로 궁남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에 조산(造山)을 쌓은 형태인데요. 이러한 형태는 바로 신선사상과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

 

 

신선사상은 중국 시황제가 방사(方士)인 서복(서불)에게 동자 3,000명을 이끌고 선가(仙家)에서 전해오는 신선도에 존재한다는 불로초를 구해오게 하였다는 일화로 많이 알려졌죠. 신선사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불사(不死)’인데요. 나중에 신선사상이 도교에 흡수된 이후에도 도교의 요체는 불로장생(不老長生)’에 있었죠.

 

 

신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신선으로 태어나는 신인(神人), 수련과 선약(불로초) 등의 복용으로 될 수 있는 선인(仙人). 결국, 일반인이 신선이 되기 위해선 수련과 선약을 획득해야만 했죠. 그리고 신선들은 산 위에서 거주한다는 믿음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요. 신선들이 거주하는 산은 동해 한가운데에 있는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으로 이루어진 삼신산으로 알려졌습니다.

 

 

▲ 버드나무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부여 궁남지

 

 

 

삼신산에 대한 믿음은 곧 정원에 연못을 파고 삼신산을 상징하는 선도(仙島)를 조성하는 행위로 상징화되었어요. 바로 궁남지가 그 대표적인 문화재랍니다. :D

 

 

삼국사기에서 궁남지는 연못을 파고 조산을 쌓고 양안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의 섬은 방장산을 나타낸다.”라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를 통해 궁남지가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외에도 경주 안압지의 삼신선도와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 경복궁 경회루의 삼신선도, 남원 광한루원의 삼신선도, 정양용의 다산초당의 신선도 등 역시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은 지당의 특징은 연못에 하나 또는 세 개의 신선도를 조성하고, 연못의 섬으로는 다리가 연결되지 않는 것이 원형의 모습이라고 해요.(하지만 예외로 광한루와 다산초당에는 다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토록 다다르기를 원하나 결국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관념적인 내용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조영행위는 자신들이 선계에 거처한다는 상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조성한 신선도에는 주로 소나무를 심는데요. 늘 푸르러서 일찍부터 신선과 함께하는 나무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죠. 그리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고, ()이 있으면 속()이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요? 바로 우주 만물은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말입니다. 이건 바로 음양(陰陽)사상의 토대입니다.

 

 

음양사상은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을 음()과 양()의 원리로 설명하는 사상을 말하는데요. 음과 양은 성질은 서로 반대되면서도, 서로 보완해주는 상보적(相補的)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거든요. 이러한 음양론적 시각은 동양철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어요

 

▲ 경복궁 향원지

 

 

 

 

 

음양사상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의 형태로 자연경관에 스며들었어요. 정원에 있는 정자와 연못의 관계를 각각 양과 음으로 보고, 네모난 연못에 정자가 함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앞서 풍수지리를 얘기하며 살펴보았던 논산 윤증고택의 지당도 천원지방의 형태죠. 그리고 궁궐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경복궁의 향원지나 창덕궁의 부용지 역시 천원지방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

 

 

 

이외에도 음양사상은 공간의 배치와 관련해서도 나타나는데요. 궁궐에서의 전조후침(前朝後寢, 앞에는 조정, 뒤에는 침전)’이나, 주거공간에서 채와 마당이 바로 음양사상을 나타냅니다.

 

 

 

 

 

500년이나 존립했던 조선은 학문의 깊이가 굉장했던 나라죠. 사대부 유학자들은 성인이 되기를 원했고, 이는 배움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리학은 간단히 말하자면 사물에 내재한 이()를 궁구하여 깨달음을 얻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배움을 실천하기 위해선 마음이 번잡하거나 혼란해서는 안 됐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요하고 맑게 유지한 후에 사물을 정밀하게 분석해나갔죠. 이 때문에 성리학자들은 한적하고 자연경관이 수려한 수기(修己)의 공간이 필요했고, 이것이 정자, 서원, 누정의 형태로 형성되었습니다.

 

 

▲ 소쇄원의 오곡문. 오곡문은 주자의 무이구곡 중 제5곡에서 따온 것이다

 

 

 

그 중 조선 성리학자들은 주자가 만년(晩年)에 구곡(九曲)을 경영한 것을 따라 하면서 그의 삶과 학문적 경향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이 어우러진 향촌에 구곡을 경영해 공부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어요. 많은 성리학자가 구곡을 경영했죠.

 

 

 

성리학은 구곡경영뿐만 아니라 전통원림을 구성하는 지당이나 화계, 수목 등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 창덕궁 부용지

 

 

 

연못은 정원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인데요. 특히 조선 시대의 연못은 네모난 방지(方池)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중국과 일본의 정원에는 곡지(曲池)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차이를 보이죠. 이러한 방지에는 원형의 섬을 조성하는 게 특징인데요. 창덕궁의 부용지, 경복궁의 향원지, 강진 다산초당의 연지, 담양 명목헌의 연못 등 많은 곳에서 그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연못은 앞서 음양사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살펴보았죠? 천원지방(天圓地方) 형태의 연못은 음양론유학적 우주관의 두 가지 관점에 모두 해당한다고 해요. 천원지방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의미인데, 음양사상의 양은 둥글고 음은 모나다(陽圓陰方)”와 같고, 유학적 우주관의 기본인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가만히 있다(天動地靜)”와도 일맥상통하게 되는 것이죠. ^^

 

 

▲ 창덕궁 낙선재 후원의 화계

 

 

 

이번엔 조선 시대 화계(花階)를 살펴볼게요. 조선 시대 정원은 대체로 후원(後園)의 형태였는데요. 이 후원은 화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후원의 모습은 유교적 지리관인 배산임수(背山臨水)’와 관련이 있습니다.

 

 

 

배산임수에 입각하면, 앞에는 물이 흐르고 뒤로는 산을 지는 곳이 바로 살기 좋은 곳에 해당합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이죠. 그러다보니 대부분 집이 뒤에 산을 끼고 있는데요. 결국, 건물의 뒤에는 경사지가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경사지는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토사가 유출되곤 하는데요. 이를 막기 위해 흙계단이나 돌을 쌓아서 석계(石階)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장식을 가미해 석계에 관목이나 꽃을 심은 것이 화계가 되었죠. 화계는 특히 궁궐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경복궁 교태전에 아미산원(蛾眉山苑)을 비롯해 창덕궁 대조전의 화계, 낙선재 후원, 창경궁의 통명전 후원 화계 등이 있습니다.

 

 

▲ 창덕궁 대조전 후원의 화계

 

 

 

그런데 혹시 발견하셨나요? 경복궁 교태전, 창덕궁 대조전, 창경궁 통명전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왕비의 침전이라는 점인데요. 이곳은 왕과 왕비의 합방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특히 지기(地氣)의 맥을 중시하다 보니, 후면에 산이 있거나 인공적인 조산이 있는 곳에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여성의 공간이기 때문에 화목류나 점경물 등을 이용해 장식한 거겠죠?

 

문화재에 어우러진 자연 속에는 선조들의 사상이 깃들어있어요. 선조들은 자연에 가까이하거나 자연을 가꿀 때,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취한다기보다는 그들의 사상을 반영하곤 하였습니다.

 

 

 

그동안 문화재에서만 역사를 찾고, 전통사상을 열심히 찾아보셨나요? 이제 문화재 속 자연에서도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아마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배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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